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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신정 차례茶禮를 모십니다.
가끔 필요(?)에 따라 구정에 모시기도 해서 조상님들께 죄송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차례’는 원래 ’다례茶禮’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다례’라 하면 옛날 궁중의 다례나 불교의 다례 등을 일컷는 말이 되고, ’차례’는 명절에 지내는 속절제俗節祭를 가리킵니다.
어제는 모처럼 온 식구가 설을 쇠러 산본집으로 몰려 와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산엘 갈려고 옷가지를 챙겨 입는데 집사람이 ’준형이를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머리가 굵어져 산을 따라 오르지 않은 지가 벌써 오랜데.....’
할머니가 달래는듯 했습니다만 준형이는 이핑개저핑개 대면서 꽁무니를 내리고 빼더니, 한참만에야 싫은 기색이 역역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다보니 함께 걸으면서도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 대화가 없었고.
그렇게 한참을 남남처럼 걸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굵어졌다’ 해도 아직은 ’어린애는 어린애’였습니다.
산기슭으로 접어들자 ’아까 왜 그랬느냐’는 듯이 준형이는 걸음이 빨라졌고 기분도 좋아졌고.
그때부터 우리 두 사람은 사이 좋게 산을 올랐습니다.
할머니가 이야기할 때는 <임도오거리>까지 였는데 내가 슬쩍 <슬기봉>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중간에 여러 번 ’할아버지, 오거리 가는 길이 왜 이래요?’ ’얼마쯤 남았어요?’ 하고 보챘습니다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며 달랬습니다.
평소 내가 다니는 험한 바윗길 코스여서 어린 준형이에게는 좀 어려웠습니다.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슬기봉을 올랐습니다.
이 기쁨, 이 감격을 함께 할려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할머니 !"
"준형아 ! 오거리야?"
"아뇨, 슬기봉 !"
"야 ! 우리 손자, 화이팅이다 !"
할머니의 기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준형이는 산에서 내려와 칭찬과 보너스를 듬뿍 받았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08년 8월 23일에 < 준형이(3) - 號外 News !>를 날린 바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 기뻐해 주십시요.
우리 손자 박준형이 오늘 오후 5시30분 수리산 슬기봉(452m)을 6월 15일에 이어 두번째로 등정을 했습니다.
몇일간 내린 비로 계곡물이 넘쳐, 가파른 산길 계단에 군데군데 물이 흘러내리고 미끄러운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상까지 거의 뛰다시피 달려올랐습니다.
뒤따르는 할애비는 숨을 헐떡이고.
앞장 선 손자는 빨리 따라오라고 ’할아버지’를 불러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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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號外News가 나간 후로는 준형이가 2학년, 3학년,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공부와 과외에 쪼들려 산본에 자주 오지를 못하기도 하고, 어쩌다 오면 컴퓨터나 닌텐도 한다고 방안에서 꼼짝을 않습니다.
철 들지 않은 시절, 서너 번 산을 오른 것이 전부입니다.
옛날에는 산본에 오면 ’나는 더 자고 갈테니 엄마 아빠만 가라’고 생떼를 쓰던 준형이인데,
이제는 와도 그만, 가도 그만입니다.
할머니는 준형이를 끔찍히도 사랑하고 준형이도 할머니를 아주 좋아했는데 지금은 옛날 같지 않습니다.
그런 준형이를 보면서 할머니는 몹시 섭섭해 합니다.
얼마전에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화장하지 말아요’라고 해서 할머니를 섭섭하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화장한 냄새가 자기집(엄마나 아빠) 화장품 냄새와 같지를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품 안의 손자>였는데 이제 5학년이라....
품 안에 들 때가 자식이지, 이제는 머리가 굵어져 서먹서먹하고 섭섭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준형이네는 준형이네대로,
준서네는 준서네대로,
집사람은 불광동 큰처남집으로.
나 홀로 덩그러니 빈 집에 홀로 앉아 이렇게 청승을 떨고 있습니다.
<자식도 품 안에 들 때 내 자식이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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