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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9.   山과 人生 (21) - 석별의 정 | 박영하 | 출처 : - 2015-12-03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있는데 집사람이 ’눈이 온다’면서 ’빨리 나와보라’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눈이라는 소리에 반가웁게 거실로 나갔더니.....

세상에.....

세상이.....

온통 눈에 휩싸였고.....

나무들엔 눈꽃들이 만발하여 눈이 부셨습니다.

한겨울도 아닌 12월 초입인데 이런 큰눈을 축복받다니..........


아침을 얼른 먹고는 수리산을 올랐습니다.

이런 눈은 좋은 징조라며  집사람도 함께 올랐습니다.

눈은 계속 내렸고.

산자락 약수터를 지나는데 뒤따르던 집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뒤돌아보니 등산화 한짝 바닥이 너덜거리며 떨어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신발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며 뜯어내고 다시 걸었습니다.

눈이 많이와서 신발이 푹푹 빠지길래, ’저런 신발로는 슬기봉 오르기는 힘들겠다 ’ 생각하고

집사람에게 ’슬기봉은 포기하고 임도오거리쪽으로 둘렛길을 돌자’고 했습니다.

그러고 한참을 눈에 푹푹 빠지며 걸어가고 있는데 집사람이 또 비명을 질렀습니다.

나머지 한짝도 바닥이 떨아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마저 뜯어내고 걷다 생각하니 ’저런 신발로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는다는 건 무리다’ 싶어, 집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난 슬기봉 오르고 싶다. 당신은 여기서 그만 내려가라. 그 신발로는 눈길 걷기가 힘들다’고.


그래서 집사람은 내려가고 나 혼자 산을 올랐습니다.

나무들은 눈이 쌓여, 눈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절경이요, 장관이었습니다.

신발이 눈속으로 푹푹 빠져 등산화속으로 들어오는듯 했습니다.

눈이 이토록 많이 왔고 쌓였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고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선 길이었습니다. 

수리산 슬기봉을 올라 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높은 산은 아니지만 바위와 돌이 많은 산입니다.

그러고 가파릅니다.

수백 수천번을 올랐기에, 산길을 훤히 알기에 가능했지, 그렇잖았으면 이런 험난한 산에 눈이 수북히 쌓였는데, 길도 보이지 않는데 오르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길이 보여야 올라를 가지요.

이 수리산 도사는 눈을 뜨고 천천히 올랐습니다.

슬기봉엘 올랐습니다.

11시 37분.

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람이 불어오는 쪽 기슭의 나무들은 가지만 앙상할 뿐, 눈이라고는 바닥에 쌓여있었습니다.

을시년스러울 정도로 삭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양쪽의 풍경은 지옥과 천국이 이럴까.......

정상을 밟았다고 집사람에게 신고를 하고는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산.

오르면서 걱정을 했었습니다.

’이런 길을 - 보이지도 않고 가파른 - 어떻게 내려오지’하며 올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를 때는 그런대로 쉬엄쉬엄 올랐는데 막상 내려가자니, 어디를 짚을지, 어디를 밟을까,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온통 눈 뿐이고.

그 밑에 바위가 있는지, 돌이 있는지, 낙엽이 쌓였는지, 심지어 거기가 길인 지, 비탈인 지......

한발짝 한발짝이 살얼음 걷듯했습니다.

오를 때는 한번도 미끄러지지않았는데 내려올 때는 두서너 번 미끄럼을 탔습니다.

다행히 엉덩방아는 찧지 않았습니다만.

거의 다 내려 올 무렵, 올라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신고 있는 아이젠을 보고서야 ’아 !  아이젠을 갖고 왔어야 하는데....’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산을 다 내려와서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사람, 올라오지않기를 잘 했다’고.

그러면서 집사람 등산화가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등산화 바닥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면 함께 산을 올랐을 것이고

그랬다면 과연 집사람이 무사히 하산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오싹했습니다.

고마운 등산화 !

백두산 설악산 지리산을 함께 한 친구를 위해 위험을 알리고 자신은 마지막으로 봉사와 희생을 하며

작별을 고한 것입니다.


이곳, 산본에는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고마운 등산화를 난 잊지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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