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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87.  <그냥보십시오> 어머니, 곧 추석입니다. | 박영하 | 출처 : - 2023-09-25 오전 7:08:47
 

내 고향은 慶尙南道 蔚山郡 下廂面 伴鳩里.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방구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님이 밭을 메고 있는데, 지나가던 마을 이장이

"성호댁이요(어머님 댁호) !

영하가 서울대학에 붙었습디다.  신문에 났데요."

그말을 들은 어머님은 등록금 걱정이 앞서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무척 기뻤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서울대학교에 시험을 보겠다고 했더니 어머님께서는 말리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서울대학교가 얼마나 어려운데 지가 붙을 수가 있겠나. 소원이나 들어주자.’ 하셨다는 겁니다.


내 어렸던 시절.

아버님은 그시절 창궐하던 전염병(호열자?)으로 한창 나이인 30대 중반에 돌아가시고

금이야 옥이야 하던 외아들을 잃어 상심하시던 할아버지 마저 1년후에 아들 따라 돌아가시고....

집안은 풍비박산.

어른들 시중만 들었지,  아무 것도 모르고 사시던 우리 어머님.

논밭이 어디에 있는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도 몰랐었고.

난  너무 어려 그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네다섯살 무렵이었으니까.

그러면서 어머님은 딸 아들들을 대학까지 보내셨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계시고 그런데로 사는 집들도 자식들을 초, 중, 고등학교 보내는 정도였지,

도시로 유학을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네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큰누나 작은누나 형 그리고 나.

모두 여섯 식구였는데

형은 울산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는 부산으로 나갔습니다.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큰누님도 초등학교 선생이었기에 여기저기로 발령을 받아 객지 생활을 해야했고

작은 누님도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부산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취직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님.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나라에서 주는 효부 표창장도 받았습니다.

안방 문 위에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는데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으면서 챙기질 못했습니다.

자손들에게 귀감이 되는 소중한 자산인대 고이 간직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나는 요즘 힘이 들거나 어려울 때면 무심결에  " 엄마 ! ’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럴 때면 우리집사람, 배시시 웃습니다.

나를 놀리면서도, (시)어머님을 떠올리기 때문이지요.

우리집사람, 제일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어머님>입니다.

엄마 !  

아시지요?


이제 곧 추석이네요.

어머니 ! 

그때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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