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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12월 24일.
나의 푸념입니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언젠가 부터, ’은퇴하면 이것을 하고 싶다 ’ 는 <꿈>이 나에게 있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아담한 까페를 열고 거기서 Guitar를 치면서 살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기타를 샀었고 항상 곁에 두고서는 (바쁘다는 핑게로 배우지는 않고) 은퇴하고 배울 날 만을 기다렸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냥 <희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부푼 <꿈>이었습니다.
세월은 한참을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시골 조카의 아들이 기타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집사람이 내 기타를 줘버렸습니다.
’ 허구헌 날 치지도, 배우지도 않으면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까 ’
바라던(?) 은퇴를 한 지도 벌써 수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기타를 시작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나이는 한 살씩 더 늘어나고....
# 2
2014년 1월 2일부터 나는 통기타 교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바뀌면 마음 변할까봐, 섯달 그믐날 학원을 찾아가서 등록을 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은 나보다 늦게 들어와서도 두세달 지나면 나보다 진도가 빨랐습니다.
지금은 집앞 주민센터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 3
2015냔 1월 18일.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Csik szentmihalyi)는 고도의 집중 상태를 ’몰입(沒入·flow)’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몰입은 고도의 집중을 유지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충분히 즐기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동양에서 말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나 ’무아경’과도 같은 개념"이라며
"몰입을 통해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자신감이 생기며 행복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있습니다.
매일 세 시간씩 몰입해서 10년 동안 1만 시간을 채우면 성공한다는 법칙입니다.
한 분야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10000시간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컴퓨터와 씨름하고
오전엔 산엘 오르고
오후엔 기타를 치고
즐겨서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
# 4
2021년 2월 18일.
설연휴 바로전에, Guitar를, 새걸로 바꿨습니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지가 어느새 7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새로 산 기타는 소리가 아주 부드럽군요.
한편으론 좀 귀설은 느낌이 들기도 하답니다.
옛 기타를 버리기는 그렇고 해서, 우선은 베란다 저 구석에 쳐박아 두었습니다.
누님께서 코로나도 있고 그래서 혼자 외로우실 것 같아
설 전에 우리집으로 모셔왔었는데
부산집에 고지서 등이 날아 올 때가 되었고
병원에 가서 약도 좀 지어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부산 가서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하고
한 일주일이나 열흘쯤 머무를 것으로 예측했기에
기타를 가지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누님께서 ’새 기타는 오가다 다칠 수가 있으니 헌 기타를 가지고 가라’ 고 조언을 하셔서
구석에 쳐박혀 있던 헌 기타를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기타 소리가 어쩌면 이렇게 좋을 수가....
새 기타를 사서 한 열흘쯤 쳤나요?
비싼 새 기타 소리가 부드럽다 못해 한편으론 귀설다 했었는데
이 값싼 낡은 기타 소리는 쩡쩡 울리며 귀를 시원하게 뚫어주는데....
’아 ---, 내가 잘못할 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가면 잘 보관해야겠다’ 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든 기타야 !
고맙다.
널 버리지 않을께.
옆에 두고 가끔씩은 찾을께.
(작년에 세번째 Guitar 로 바꿨습니다.)
# 5
2021년 3월 13일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노래방이나 회식자리에서는 남들만큼은 한다고 나름으로는 그렇게 생각을 해왔었습니다.
그랬는데 요즘 나는 패닉에 빠져있습니다.
노래가 제대로 불러지지를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회사생활을 그만 둔 후로는 노래방에 가는 일도 없고
나이도 들만큼 들어서겠지요.
요즘 기타를 치고 있는데
스트로크(스트럼)와 멜로디만 치다보니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곁드려 불러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노래가 흥얼거려는 지는데 노래가 불러지지를 않는 겁니다.
내가 기타를 배울려고 했던 것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랬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노래가 노래처럼 불러지지를 않으니....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 기타치기는 그런대로 되어가는데 노래가 멀어져가다니.......
씁쓸하기 짝이 없네요.
# 6
2025년 8월 20일.
무미건조하게 지내기 쉬운 생生의 후반,
하루의 반 (오후 서너시간) 을 기타와 놀며 살고 있습니다.
쏟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턱도 없는 진전과 결과에 대한 번민과 좌절.
그러다가도 어느 날, 리듬치기가 부드러워지고 맑은 소리가 날라치면
날아갈듯 짜릿한 즐거움과 기대감.
나는 몰입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집앞 주민센터에 나가 배우고 있습니다.
望九늙은이가 기타 매고 집밖을 나다니는 것, 이웃 볼까 마음 쓰이고
젊은(?) 친구들 사이에 노인네가 끼어있으니 어줍잖기도 하고.
(수강생 중에서는 가장 오래 다닌 학생입니다.)
오랜 동안, 생각 생각 끝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 10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고.
그동안 배우며 익힌 것으로, 이젠 나 혼자서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이렇게 먹고나니 마음이 참 편하네요.
진작에사 이럴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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