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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였던 것같다.
내가 금성전선 부장인가, 본부장이었을 때, 김지주 부사장이 럭키화학에서 금성전선으로 오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인사는 흔치 않은 인사였다.
화학계열인 럭키화학에서 전기전자계열인 금성전선으로 오셨으니.....
왜 그런 인사를 했는지 나같은 졸개가 알리는 없었고.
논에 미꾸라지를 키울 때 메기를 넣어 키우면 미꾸라지들이 훨씬 통통하게 살이 찐다고 한다.
미꾸라지들이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그 결과 더 튼튼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부사장은 메기였다.
그때 회사는 안정되다 못해 약간은 침체된 분위기였고 김부사장의 발상과 행동은 신선했다.
그당시 내 주요 업무는 미국 AT&T와 광섬유(Optical Fiber) 생산을 위한 기술제휴및 합작회사 설립이었다.
김부사장이 직속 상사였다.
김부사장께서 구사하는 영어는 너무 고급스러워 미국측 파트너들도 존중했던 것같고.
(사실 김부사장께서는 낮에 TIME등을 읽으시면서 좋은 것들을 찢어두셨다가 저녁에 집에 갖고 가서 다시 읽으셨다.
찢어서 가지고 가는 스크랩이 매일 한 묶음씩 되었고 스크랩한 것이 적은 날은 허전해 하셨다.)
1983년 AT&T社와 광섬유 생산을 위한 합작투자 및 기술도입계약을 추진할 때의 일이다.
김지주 부사장을 모시고 계약관련 협의차 미국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Atlanta에서 협의를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L.A.로 왔다.
L.A. 에 사시는 법대 동기 몇몇 분들이 저녁을 사셨다.
김부사장은 술을 엄청 좋아하셨는데 그당시는 의사의 권고가 있어 금주중이었다.
그래서 부사장께서는 자기에게 오는 술은 내가 대신 마신다고 말씀하셨고
명을 받아(?) 그친구들의 술잔을 내가 모두 받아 마셨고.
혼미한 가운데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는 Alaska에 중간급유차 기착을 했고.
내렸다가 타라고 해서 비행기에서 내렸고, 비행기에 타라는 방송을 하기에 탈려고 갔더니
입구에 서서 티켓 체크를 하고 있던 스튜어디스와 남자승무원들이 ’다음 비행기’라고 하던 기억이 있고.
새벽 6시 40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6시 20분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KAL 007이 사고가 났다고 했다.
KAL 007은 뉴욕에서 출발했고, 우리는 KAL 015로 L.A.에서 출발하여,
함께 앵커리지에 기착했다가 20분 간격으로 같은 항로로 김포로 날아왔다.
(한밤중에, Alaska공항에, 같은 시간대에, 서울로 오는 KAL 비행기 2대가 함께 있을 줄이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내가 도곡동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술 한 잔을 하시고는
"니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
면서 우리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그날따라 에리베이트가 정전이 되어 움직이질 않았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부사장은 몸무게도 몸무게지만 뒤뚱뒤뚱 걷는 것도 어려운 분이었다.
허구헌 날 보신탕에 소주를 마셔댔으니 그럴 수 밖에.
나는 `그냥 돌아가셔야 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자" 하시는 게 아닌가.
우린 12층인가에 살고 있었다.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지금 기억에 없다.
어쨌던 우리는 올라갔다.
그때 우리는 거실에 응접세트도 없이 살았다.
바닥에 주저 앉아 차 한 잔 하시고 가셨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평범하기 보다는 비범非凡하기를 원한다.
비범이라는 것이 뭔가?
보통이 아니라는 말 아닌가?
유명하다는 예술가 과학자 정치가 기업가등 대부분은 그들의 삶이, 그들의 성품이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을 너머 괴팍한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훌륭한 업적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는다.
김지주라는 분도 평범한 분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거나 혐오식품인 개고기를 즐겨드셨다거나
사람에 대한 好惡가 지나치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탐구열 집중력 추진력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래선지 2 ~ 3년 후에 회장실 사장으로 영전하여 가셨다.
일로서 모시기에는 능력이 달려 힘들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존경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남는다.
건강을 소홀히 해 너무 일찍 작고하신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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