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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90.  문학 역사 기행(5) - 서해안 맛 기행 (1) (2011-06-05) | 박영하 | 출처 : - 2011-06-05
 

 


아침에 앞 베란다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심결에 받았더니 석회장이었습니다.


"지금 어디 쯤 입니까?

모두 도착했습니다.

박회장만 오면 됩니다."


순간 나는 자지러졌습니다.

말문이 막히고 기가 차 할 말을 잃고....


"석회장.

죄송합니다.

내가 그만 깜빡했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집입니다."


"???..."


"죄송합니다.

오늘인 줄 전혀 생각못했습니다.

그냥 출발하십시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고 한 동안 전화기 너머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산본으로 경유해서 갈테니 금정역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대 DMP3기가 역사와 문학 기행을 봄 가을로 가고 있는데 어제는 추사 김정희 고택을 찾아 태안/예산/아산을 다녀왔습니다.

그저께 세 번씩이나 전화메시지를 보내왔었건만 나는 그걸 그냥 건성으로 보았습니다.

’아직 멀었거니..’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일께워 줬을 수도 있었으련만, 며칠 전 고향 옛친구들과 여행을 가버려 그런 요행도 없었고.

나는 나대로 요즘 집안일로 혼이 빠져, 답답하고 무료하게 세월을 지새다 보니 날자 감각을 잃고 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칠십 줄에 들어섰는데 벌써 이런 <건망증인지 치매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니 앞날이 걱정됩니다.


잠간.

어제 김제독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재미를 좀 볼려고 비아그라를 먹고는 그만 잊어버리고 자면 <건망증>.

재미를 한참 보고 나서 비아그라를 챙겨 먹으면 <치매>.


첫 방문지는 태안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이었습니다.

18만평에 10,000 여종의 수종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한 나무들이 참 많았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벌써 배 고프다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샌드위치 남은 것이 있어(집사람이 가지 않아 ) 나눠줬습니다.

이번 여행은 역사와 문학 기행이라기 보다 <맛기행>이었습니다.

장소 선택부터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태안/예산/아산.

점심을 태안의 <송정꽃게집(041-673-2666)>에서 했는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

내 평생 먹은 것보다 어제 점심에 먹은 것이 더 많고 맛 있었습니다.

간장 게장, 꽃게찜, 꽃게탕 그리고 소주와 막걸리.

마나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않아 남자들은 애꿎게 낮술을 더 마셨습니다.

이집은 전화예약이 되지 않고 줄을 섭니다.

우리가 먹고 나오면서 줄 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50분을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예산 수덕사를 찾았습니다.

만공, 경허, 일엽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오래된 건축물로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계단이 가팔라 씩씩대는 사람들에게 석회장이 한 마디 했습니다.

’배가 좀 꺼져야 저녁에 민물장어구이가 맛 있다’고.


한국사에서 19세기 최고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희는 추사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최고의 글씨는 물론이고

세한도로 대표되는 그림과 시와 산문에 이르기까지 학자로서, 또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물입니다.

김정희의 천재성은 일찍부터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일곱 살 때의 일입니다.

번암 채제공이 집 앞을 지나가다가 대문에 써 붙인 ‘입춘첩(立春帖)’ 글씨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글씨임을 알아차린 채제공은 문을 두드려 누가 쓴 글씨인지를 물었습니다.

마침 아버지 김노경이 ’우리 집 아이의 글씨’라고 대답했습니다.

글씨의 주인공을 안 채제공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반드시 명필로서 이름을 떨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해 질 것이니 절대로 붓을 쥐게 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되면 반드시 크고 귀하게 될 것입니다."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제주도 유배기간을 통해서도 그는 쉬지 않고 붓을 잡아 그리고 쓰는 일에 매진하였습니다.

최고의 걸작품인 ‘세한도’도 이 시기에 그려졌고, 흔히 추사체라 불리는 그의 독창적인 서체도 이때 완성되었습니다.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는 김정희의 최고 걸작이자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이라 평가받는 그림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고택을 찾았습니다.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위치한 추사의 고택은 원래 99칸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영조의 부마이며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입니다.

안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

살고 싶은, 정이 가는 집이었습니다.

추사가 중국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었다는 증조부 묘소 앞 백송白松 한 그루가 일품이었습니다. 


배는 아직 꺼지지도 않고 낮술은 얼큰한데

갈 길은 멀고 저녀식사 예약시간은 다가오고.

박정희대통령이 자주 들렸다는 아산의<연춘식당>으로 갔습니다.

민물장어 요리집입니다.(041-545-2866)

신정호숫가 였는데 맛을 알고 찾아든 식객들로 야외의 호숫가 자리는 빈 자리 하나 없었습니다.

수백명은 족히 되어보였습니다.

양념구이 소금구이 중국술 소주.

그런데 막걸리는 없었습니다.

주인 왈 ’장어요리에 막걸리는 맞지 않는다’나.

게장과 낮술에 절어 저녁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아이구, 뻬갈 한 잔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그때부터 ’언제그랬느냐’는 듯이 술맛에 생기가 돌며 술잔은 오가고....


밤늦게 산본 빈 집에 들어와 자고 아침에 일어나 이글을 씁니다.

숙제를 끝냈으니 이제 후련한 마음으로 뒷산 수리산을 오르렵니다.

그런데 미안한 일이 생각나네요.

어제는 짝마토(옛날 다니던 회사 친구들 모임)가 우리집 뒷산 수리산을 올랐습니다.

나를 배려해서 일부러 수리산으로 정했는데 내가 어제 빠졌으니....

친구들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용서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만 빈다고 내 빈 자리가 체워졌겠습니까.

친구들!

할 말도, 해 줄 말도 없구려.

유구무언이오.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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