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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54.  내가 살면서 하지않은 것과 하지 못한 것 | 박영하 | 출처 : - 2019-03-29
 

나는 살아오면서 결혼식 주례를 선 적이 없다.

옛날 안양공장장 시절, 공장 구내식당에서 사원들 합동결혼식을 열었는데, 그때도 관리담당 부공장장이 주례를 맡았다. 

공장장, 사장을 하다보니 여러 사람들이 주례 부탁을 해 와, 그때마다 사양하고 양해를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 중 어떤 사원은 <사장님께서 주례를 서 주셔야 하는 이유 4가지>라는 글까지 쓰 와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언젠가 고향 지역 신문사에서,  ’신년을 맞아 칼럼 필진을 새로 짜야 한다’면서 허락을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나는 사양했다.

나는 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해서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 ’이렇게 살아야겠다’하는 것에는 익숙하고 마음이 편한데

남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생각한다.



총각 시절, 재산이 수백억대라는 필동 과부집 외동딸과 맞선을 봤다.

대한극장 2층 다방에서.

그날 하루 데이트를 해보고는 그녀 집 대문앞에서  ’안녕 ~ ’했다.


금성전선 안양공장  과장인가 부장시절에...

그 당시 알미늄 압력밥솥을 개발해서 크게 히트를 친 회사가 있었다. 

나더러 공장장으로 오라는 꾐이 있었는데 안 갔다.

왜 오라고 했는지, 왜 안갔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카드나 화투를 즐기지 않는다.

대학생 때 기루다 놀이 가끔 했고, 회사 영업할 때 고객들과 친 고스톱 몇 번 정도. 

회사 다닐 때, 미국 출장 다녀 오는 길에, Las Vegas에서 열리고 있던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를 참관하러 들렸을 때도, 카지노 구경은 했지만 ’100달러만 잃는다’는 처음 생각을 잃지않았다.



금성전선 안양공장 책임자로 있을 때다.

어느 일요일.

본사에 근무하는 직속 상관이 공장엘 들렸다. 

댁이 안양이었다.

점심 대접을 할려고 안양으로 나갔다.

식사를 하면서 ’아무개 부장을 부공장장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었는데도 나는 내 의견을 물어보는 줄로 알았다.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안양공장장으로 근무할 때였는데 본사 윗사람이 구미공장으로 출장가는데 동행을 했다.

구미공장장과 셋이서  대구 어느 한정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그분이 내게 맥주잔을 집어던졌다.

바로 던지면  내가 다치니까 내 뒤 벽에 걸려있던 그림액자로 던져 액자가 박살이 났다.

아마도 내가 그분의 심기 관리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분은 오너였는데.

이런  내 성깔 때문에 나는 승진 시기만 되면 뒤쳐지거나 엉뚱한 곳으로 발령이 났었고

그래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입사동기인 친구가 언젠가 내게 이렇게 타일렀다.

’윗사람 좀 잘 모셔라’고.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편협하고 옹졸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서도 조직생활 회사생활을 40년 넘게 했으니 기적이다.


LG기공 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친구인 울산지역구 국회의원이 ’당 - 당시 여당 - 공천을 받아줄테니 울산시장 선거에 나가보라’고 추천을 해왔다.

대답을 않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 친구가 국회의원이 되어 축하하는 식사 자리에서,  내게 후원회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부부가 함께 한 자리여서 눈치가 보여 거절을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후원회장이란 사람이 후원금을 내기는 커녕 후원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맡질 말든가, 맡았으면 제 역할을 하든가 했어야했는데....

지금도 친구에게 미안하다.


LG전선(금성전선)을 마지막 떠나면서 나는 울분을 삼켰다.

’내가 왜 사장을 못하고 떠나야 하나’며.


나는 좋아하는 운동도 없고 특기라고 할만한 재주도 없다.

그저 평범하기가 짝이 없다.

별 생각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았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회사에서의 지위가 차츰 높아지고 여기저기 사업장을 옮겨다니다 보니

사원들과의 스킨십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래서 산행을 시작했다.

구미 금오산은 2년동안에 백 수십 번을 올랐고

지금 사는 산본 수리산은 수천번을 오르고 있다.

비슷한 무렵에 나는 수영을 배웠었다.

마침 회사에 수영 잘 하는 사원이 있었다.

수영장에 등록을 하고 출근 전 새벽시간에 나갔다.

김대리가 집중적으로 붙어 나를 지도하는데도 요지부동 물에 뜨지를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탈진현상이 왔고 드디어 링겔 주사를 맞아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주사를 맞아가면서도 끈질기게 수영장을 찾았다.

나는 한 번 시작을 하면 끈질긴 데가 있다.

그러다  <혈압저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는 별 수 없이 중단하고 말았다.

나는 어려서 중이염을 앓았고 그래서 30대 초반에 국립의료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내 오른쪽 고막이 뜯겨져 버렸다.

그후로 나는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심결에도 오른쪽 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수영을 시작할 때도 그것이 신경 쓰였고 그래서 귀막이를 단단히 하고 물에 들어갔었지만

얼굴을 물속에 쳐박는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내 몸이 거부를 하는 바람에 물에서 뜨질 못한 것이다.

나는 잘 하는 것도 없지만 수영처럼 시작을 해놓고 이렇게 <두 손 들고 항복한 일>은 처음이다.



내가 어렵고 힘 들 때, 나를 자식처럼 동생처럼 보담아 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고 이끌어 주신 분들이 몇분 계셨다.

성원이 어머님,  호명이 어머님,  김지주 부사장님...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이다.

이 세상에서 갚지 못한 고마움을 저 세상에서는 꼭 갚아야지. 


                                                <2016-03-29>


 


 


 


 


 


 


사장님께서 주례를 서 주셔야 하는 이유 4가지


지난 금요일에 주례를 부탁드렸던 OOO 입니다.

주말내내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결론은 역시 제 결혼의 주례는 사장님께서 맡아주셔야 한다는 것이었기에 무례함을 무릅쓰고 메일로 다시 간청을 드립니다.

제 결혼식의 주례를 사장님께서 반드시 맡아 주셔야 할 이유를 몇가지 적어 보겠습니다.


첫째로, 혁신과 변화 때문입니다.

우리 LG기공은 사장님께서 부임하신 이래 수많은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러부문에서 크나큰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도 이번 기회에 단 한차례도 주례를 서지 않으셨던 과거의 모습을 혁신하셔서 전사 차원의 귀감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도전적인 목표설정 때문입니다.

사장님께서는 제 주례를 맡으신 이후에 다른 사람들의 주례 부탁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을 염려하고 계시지만, 반대로 향후 우리회사 직원들의 결혼주례는 모두 사장님께서 맡으시겠다는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신다면 그리 염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세째는, 상하간 Boundaryless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분이 세 분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부모님이요, 둘째는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준 스승이요,

세째가 자신의 새로운 출발인 결혼의 주례를 맡아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사장님께서 저를 시작으로 많은 사원들의 주례를 맡아 주신다면 상하간의 장벽제거는 저절로 이루어 지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START의 문제입니다.

업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사에서도 START는 매우 중요하며,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부디 사장님의 주례 START가 더 이상 늦어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사장님은 반드시 제 주례를 맡아주셔야 합니다.

자칫 무례함으로 여기시지는 않으실까 하는 걱정으로 조금 망설여지는편지입니다.

오늘 범한 무례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용서받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제 청을 받아들여 주십시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1996. 9. 23      OOO 드림





 


----- Original Message -----

From: 지호원 [jihowon@korea.com]

Sent: Thu, 21 Aug 2008 15:58:50 +0900

To: 박영하 [youngha@parkyoungha.com]

Subject: RE: Re:바쁘기는 한데....


영변과 장춘 !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거듭 말씀 올리지만 책 한 권 내시지요. 

시각을 개인사에서 사회현상쪽으로 약간만 돌려 쓰시면...


회장님 글 솜씨면 아주 재미있는 책이 나올것도 같은데요...


늘, 언제나 건강하십시요!

그래서 오래토록 즐거운 글 남겨주세요.... 



 


RE: Re:바쁘기는 한데.... | 박영하 | 출처 : -  2008-08-22 오전 10:25:29 

 

작가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나 봅니다.


항상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나도 글쓰기, 책 한 권쯤 쓰보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 부담스럽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 때문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나 예병일의 경제노트 등등

일반적인 글쓰기가, 어떤 이야기 에피소드 글 등을 올려놓고는, 자기 의견을 진지하게 길게 늘어놓는 형식인데

나는 그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지식이나 능력의 한계도 있어 그러기도 하겠지만,

또 하나는 견해 생각 철학의 차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알려주거나 전해주거나 말씀을 드리고

읽는 분들이 자유롭게 생각토록 가급적 내 생각과 의견은 짧게 가볍게 전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내가 내 주변잡기를 주로 쓰고 사회현상을 다루지 않음도 비슷한 연유입니다.

수신제가.

내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고 생각하는 것으로 가름해야지,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주제 넘은 것같아서.

사회현상을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책쓰기에 통할지 궁금하고

그래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도 고견을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바쁘기는 한데.... (2008-08-20) 



그저께는 영변에 갔다 왔고

오늘은 장춘엘 다녀 왔다.

이 아니 바쁠손가?


영변이라면 북한땅이고

장춘은 중국땅 만주에 있으니.


다 웃자고 하는 소리다.


<영변>은 서초동에 있는 음식점 이름이다.

부산 송정에 있는 영변이란 횟집이 친 새끼란다.

세꼬시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옛날 YS가 단골이어서 유명하게 된  집이라고 한다.

서초사거리에서 예술의전당 쪽으로 가다 오른쪽 우체국 뒷골목,

위치도 별로 좋지 않고 건물도 음식점이라기 보다 일반 사무용 빌딩같아 보여

손님이 없을 것같은데 손님이 많단다.

그래선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주문을 더 받지도 않고 술도 한 사람당 한 병 이상은 주지 않는

건방진(?) 식당이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주인여자의 행동거지를 볼짝시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지만

세꼬시 맛은 일품이다.

입에 살살 녹는다.

한 번 쯤은 가 볼만 하다.


그런데 횟집인데 왜 영변이라고 이름을 붙였나?

영변은 진달래 피는 약산 골짝인데.

그리고 DJ나 NO 같으면 또 모르겠는데 YS가 왜 영변을 좋아했는지도 궁금하다.


오늘은 <장춘>엘 갔다.

신사동사거리에 있는 제주향토음식전문점이다.

성게국 갈치국 생선조림이 일품이다.

오늘 우리는 돔배기(돼지수육)와 생선회를 먹었다.

이집은 제주도가 고향인 박태진사장 단골집인데 오늘은 박사장을 빼고 우리들만 갔다.

그랬는데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일행중 한 사람이 우리를 알아보고 우리 테이블에 와서 인사를 했다.

박사장 회사 친구였다.


이 집도 그렇지.

아니 제주도 향토음식점인데 이름을 어떻게 <장춘>이라고 붙였나?

그 많은 좋은 이름들을 두고서 말이다.


이래저래 며칠새 바쁘게 다녔다.

월요일에는 영변가서 남북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고

오늘은 장춘 가서 호상간에 우의와 친선을 도모했다.

옛날같으면 승용차나 비행기를 이용했을 터지만

요즘은 지하철을 이용한다.

참 편리하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하더라만 나는 요즘 바쁘다.

바쁘게 산다.

그런데 실속이 있어야지.....................                             


                                  출처 : 바쁘기는 한데.... (2008-08-20) 

 

 

 





고향 후배가 전화를 해왔다.

"선배님 !

울산  00신문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울산 출신으로  00신문에 칼럼을 써 주실 분을 찾고 있다면서 추천해 달라고.’

서울에 계신 여러 선배님들과 상의를 하니 영하형님이 좋을 것 같다고들 하십니다.

선배님, 허락해 주십시요."

난감했다.

그러나 그건 순간.

’고향 후배님이 내게 이런 어려운 부탁을 할 때까지 얼마나 망서리고 고민을 했겠나.’

’나를 그래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박절하게 거절을 해서야....’

’.................................’

오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 그렇게 해 봅시다."

하고 말았다.


그후 울산 00신문의 책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개를 받았습니다.

<태화강>이라는 칼럼인데 잘 부탁 드립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예.

말씀은 전해 들었습니다만 저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건 거절이 아니고 제가 부족하고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참 조심스럽습니다.

참고로 제 홈페이지가 있는데 한 번 들어가 보시고 판단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그러고 며칠이 지난  어저께 다시 전화가 왔다.

’신년을 맞아 칼럼의 필진을 새로 짜야 하는데 지금 확정을 해야한다’면서 허락을 해달라고.

나는 정색을 하며 사양을 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일에 감동을 받거나,  스스로 느끼거나  반성을 해서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내 자신에게 할뿐,

남들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는 글을 쓸 자신도,자격도 없습니다.

칼럼은 그런 글을 써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글쓰기가 익숙치 않습니다.

앞으로 고향을 위해 다른 일들이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봉사하겠습니다."


                         출처:자기 분수를 알고 지키며 산다는 것 (200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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