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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36.  영하에게 | 박영하 | 출처 : - 2009-05-09
 

영하에게,

 

오늘 어머니 장례를 치렀네.

이네 오래 밀린 메일을 체크하려니 자네 편지가 있구먼.

그런데 어쩌면 내 마음을 그렇게도 잘 읽었나?

사실 어머니가 장수하셨기에 돌아 가셨다고 해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네.

그러나 눈물이 북 받쳤던 것은 그 동안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시던 아버지를 이제는 천국에서 만나셔서

한을 푸시겠구나 하니 이제까지 맺혀 있던 큰 숙제가 풀린 것 같아 울음을 참을수가 없었다네.

 

두 분이 80을 넘어 90 중반에 이르자 그렇게 부창부수하는 모습에

그 연세에도 상호 교감하는 관계를 옆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지난 9년간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시는 말씀을 수없이 하셨네.

너희 아버지 어데 가셨냐?

너희 아버지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 하시겠니?

천당에 가면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아버지를 찾겠니... 등 등.

아버지를 그리워 하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육신의 짐을 벗어 버리고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시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그 동안 어머니의 안타까움을 풀어 드리지 못해 답답해 하던 마음에 서러움이 북받쳤었다네.

 

오늘 박회장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르고 이제 처음으로 "고아"의 신분에 익숙해 지려고 하니

왠지 자꾸 어색해지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시간이 가장 확실한 효력의 약이라고들 하니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박회장의 지혜를 더 빌려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네.

 

고맙네.

 

                                  O경이가




 

 

 

제      목 | 상주인 장자는 슬퍼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보낸 날짜 | 2009년 05월 08일 (금요일) 오전 08:32  받은 날짜 | -- 

 보낸 사람 | 박영하 <
youngha@parkyoungha.com>   

 받는 사람 |

 

유명한 도인인 장자,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의 얘기입니다.

부음을 받은 장자의 한 친구가 문상을 갔습니다.

그런데 문상을 간 그 친구는 상가에 들어서서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주의 행동이 기상천외했기 때문입니다.

상주인 장자는 슬퍼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슬퍼하기는 커녕, 빈 물동이를 엎어놓고 그것을 두드리며 흥얼흥얼 노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상을 간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사랑하는 부인이 죽었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러자 장자의 대답이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그럼 내가 슬픔에 겨워 울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친구는 당연히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오늘보다 더 기꺼운 날 이 있을 수가 없네.

세상은 원래 무였네.

아무 것도 없었는데 기가 생기고 형질이 생기고, 그래서 생겨난 게 삶이란 거네.

이제 내 아내는 원래대로 무로 다시 돌아갔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리고 나서 장자는 춤까지 너울너울 췄다고 합니다.





친구 이O경의원 자당 어르신께서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향년 106세를 누리셨습니다.

오늘 동선이와 문상을 가려고 합니다. 

어머님 !

아버님을 만나셨지요.

천국에서도 행복하십시요.




 




 




백년해로(百年偕老) 만수무강(萬壽無疆)





오늘 안양베네스트C.C. 에서 골프를 쳤다.

용경이가 동선이와 나를 초청해 즐거운 자리를 마련했다.

KT사장을 해서인지 크럽하우스에서의 대접도 융숭했다.

안양에서 공장장을 하던 시절에 다니고는 처음이니 20년만에 다시 찾은 안양 C.C.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림같은, 꿈같은 골프장이다.


가끔씩 얼굴을 보거나 소식을 듣긴했지만 셋이 한자리에 뫃인 것은 40년만이다.

까마득한 옛날 일들이 떠오른다.

1960년대 후반 그러니까 1966 ~ 1968년이었을꺼다.

동선이는 한일나이론 안양공장, 나는 한국케이블 안양공장 신입사원이었고

용경이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느라고 안양 집에 있을 때다.

영어회화를 한답시고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Mr.Murray(당시 미군병사였다)를 데리고

용경이네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이 새롭다.

용경이네  어르신은 삼성의원을 하셨는데 병원건물 1층은 병원으로 쓰시고 2층은 교회로 쓰셨다.

안양의 유지요, 원로이셨다.


그때의 일화다.

어떤 환자가 아파서 왔는데, 어르신께서 진찰을 해보시고는 하신 말씀,


의사 : 괜찮습니다.

            그냥 가십시요.


환자 : 주사나 한대....

           아니면 약이라도....


의사 : 그 정도는 주사나, 약이 필요 없습니다.

            주의하시고 안정하시면 됩니다.


환자는 주사나 한대, 약이나 한첩 받을려고 왔는데

근엄하신 의사선생님은 <그냥 가시라>니....

이러니 병원에 손님이 올 턱이 있나(?).    

그런데 그 인술이 꽃을 피워  큰 아드님(이용각박사)은 카토릭의대 성모병원 원장을 하셨다.


부끄럽지만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 혈기가 방장(方長)하다 못해 도를 넘는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안양역전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건너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시끄럽게 굴었겠다.

그걸 참지 못하고 시비가 붙었는데 급기야 상대방이 병원으로 가고 이빨까지 뽑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치과의사와 짜고 썩은 이빨을 차제에 뽑았다고 했다.)

그러니 일이 간단하지 않을 수 밖에.

안양경찰서 유치장에 갖히는 신세가 되었다.

철이 김장철이었나부다.

유치장을 담당하는 경찰관이 내가 들으라는 듯이 김장 걱정을 하고 있었으니.

(나중에 생각해 보니 김장값 좀 주면 선처를 할 수도 있다는 신호였기도 했는데 말이다.)

밤중이라 손을 쓸 수도 없고.

(허긴 손 쓸 곳도 없었지만)

어찌어찌해서 용경이에게 연락이 닿았다.

하늘같은 어르신께서 경찰서장에게 선처를 빌으셨다고 했다.

아 ~, 이무슨 불경스러움인가.


아버님께서는 아흔일곱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벌써 7년전이라고 용경이가 말했다.

어머님은 올해 백 하고도 네살이시라고 한다.

약간 혼미하실 때도 있지만 건강하시다고 했다.

부부가 이토록 천수를 누리심은, 평생을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가르침을 쫓아  사셨기에

받으신 은혜일 거라 생각된다.

백년해로(百年偕老) !

만수무강(萬壽無疆) !

이두분들을 두고 하는 말일꺼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아버님 !  감사합니다.

어머님 !  건강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출처 : 안양베네스트C.C.  <2007-06-12>  




 

1964 ~ 5 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Mr. Murray 와 함께 영어회화 공부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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