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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29.  나 어렸을 적에.....(2018-01-11) | 박영하 | 출처 : - 2019-03-22
 

내 어렸던 시절.

아버님은 그시절 창궐하던 전염병(호열자?)으로 한창 나이인 30대 중반에 돌아가시고

금이야 옥이야 하던 외아들을 잃어 상심하시던 할아버지 마저 1년후에 아들 따라 돌아가시고....

집안은 풍비박산.

난  너무 어려 그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네다섯살 무렵이었으니까.


어른들 시중만 들었지,  아무 것도 모르고 사시던 우리 어머님.

논밭이 어디에 있는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도 몰랐었고.

청천벽력이었고 황당하기 그지 없었을 것같다.

우리 할머님은 밭일은 커녕, 부엌에도 들어가지 않으시던 분이셨다.


그래도 우리 어머님은 딸 둘, 아들 둘을 객지로 보내 공부를 시키셨다.

큰 딸은 초등학교 교사로,

나머지 셋은 대학까지 보내셨다.

큰아들은 중학교부터 객지(부산)로  유학을 시키셨고.

그 당시로는 쉽지않은 일이었다.


누님들과 형님이 모두 집을 떠나 살았기에

난 할머니와 어머니, 셋이서 살았다.

어려서였던지, 외롭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아마도 객식구들이 들끓어서였나보다.

남자 없는 과붇댁이라 (편해서) 친척들은 물론 동네 여자분들이 심심찮게 놀러들 왔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아침이면 소 먹이러 가라고 곤히 자는 나를 깨우시던 생각이 난다.

소를 몰고 논 둑, 밭 둑으로 가서 풀을 먹였다.

아침 이슬이 차거웠다는 생각이 난다.

학교 갔다 오면 또 소 먹이러 갔다.

집앞 태화강과 동천(냉그랑)이 만나는 지점에 큰 모래벌판이 있었고 거기에 큰 풀밭(우리는 그곳을 ’ 뻐던*’이라 불렀다)이 깔려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소를 풀어놓고 놀았다.

강물에서 자맥질도 하고.

가끔 근처 밭에 들어가 참외나 수박 서리도 하고.

콩이나 보리를 서리해 구워먹기도 했다.

감이 익을 무렵이면 난 집 담장 안 단감을 따 가지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먹었다.

먹을 게 별로 없던 그 시절, 단감은 꿀맛이었다.


가을이 오면 새 보는 것도 일과였다.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참새떼가 몰려들었다.

그들도 배가 고파서였겠지.

허수아비를 만들어 여기저기 꽂아 두기도 하고

긴 대나무 장대를 휘이-이,  휘이-이 휘저어며

“훠어-이. 훠어-이” 새를 쫓았다.

그런데 새를 쫓는 것 (shoo away sparrows from crops)인데 왜 <새 본다>고 했을까?

그리고 그리고 말이다.

공부는 언제 했을까.....(짬짜미 했겠지)


                                                     <2018-01-11>


 


#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아침이면  ’소  먹이러 가라’고, 곤히 자는 나를 깨우시던 생각이 납니다.

소를 몰고 논 둑, 밭 둑으로 가서 풀을 먹였습니다.

아침 이슬이 차거웠다는 생각이 납니다.

학교 갔다 오면 또 소 먹이러 갔습니다.

집앞 태화강과 동천(냉그랑)이 만나는 지점에 큰 모래벌판이 있었고

거기에 큰 풀밭(우리는 그곳을 ’ 뻐던 ’이라 불렀다)이 깔려있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소를 풀어놓고 놀았습니다.

강물에서 자맥질도 하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헤엄을 칠 줄 모릅니다.

큰 애들이 강에 들어가서 헤엄을 치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주로 꼬시레기.

그런데 그냥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나에게 고추장을 갖고 오게 했습니다.

우리집에는 장독대옆에 큰 파초芭蕉가 있었는데

소 먹이러 갈 때는, 그 파초잎을 따서 거기에 고추장을 (몰래 몰래) 싸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양은도시락 반찬통에다 고추장을 담아 가지고 갔습니다.

저녁 무렵, 소를 다 먹이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반찬통이 문제였습니다.

(엄마한테 들킬까봐....)

그래서 반찬통을 강변 모래밭에 묻어버리고 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님이 도시락을 쌀려다 보니 반찬통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나를 다그쳤습니다.

이실직고했습니다.

가서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갔습니다.

모래밭을 여기저기 헤매며 아무리 찾아도 찾질 못했습니다.

그땐  혼이 빠지도록 바동거렸겠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네요.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소를 먹이러 갈 때, 올 때,

아이들은 소(등)를 타기도 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딱 한 번 타봤는데....

(대붓) 둑에서 소를 탔는데 그냥그냥 탈만했습니다.

그러다가 둑길에서 아랫쪽 강쪽으로 내려가다가, 그만 앞으로 쏠리며 떨어졌습니다.

소 머리쪽으로.

내리막길에서 소 앞으로 떨어졌으니....

밟혔으면...

그런데 다행히도 소 발에 밟히지않았습니다.(소가 밟지않았었는지....)

천운이었습니다.|

 


##

내가 다닌 울산 복산국민학교에는 논과 밭이 있었습니다.

밭은 학교 안, 창고건물 옆에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 가래(=삽)를 갖고 오래서, (장갑도 끼지 못한) 맨 손으로 질질 끄집고 가다가 어찌나 손이 시리던지, 울며 집으로 되돌아 온 기억이 납니다.

논은 태화강 건너편, 옛날 군용 비행장터 근처에 있었습니다.

가을이면 거둬들인 벼로, 떡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줘,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납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전교생(?)이 산토끼 몰이(사냥)를 했습니다.

학교뒤 백양사 절쪽 산허리에서.

학생들을 두편으로 나눠,

한팀은 아랫쪽에 줄지어 서 있고

또 한팀은 산 위에서 토끼들을 몰고 아랫쪽으로 내려오는 놀이였습니다.

몇마리쯤 잡았는지는 기억이 나지않습니다.

 


###

5학년 땐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버스가 아닌, 트럭을 타고 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관입니다.

트럭 뒤 짐칸을 새끼줄로 가로 세로로 바둑판처럼 엮어 묶어놓고

그 사이 사이에 학생들이 (바둑알 처럼) 쪼그리고 않아갔습니다.

그 먼 경주까지.

그래도 재밋고 즐거웠습니다.

돈 없어 못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빨갱이들이 설쳐대지만 그땐 대단했나 봅니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운 저녁에,

자동차 불빛을 환하게 밝히지 못하고 캄캄한 자갈길을 덜컹 덜컹 달려왔습니다.

공비(=빨갱이)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일라이트는 이겁니다.

수학여행을 가는데, 가지고 갈 것이 여의치 않았었던지,

집에 있던 감홍시를 가지고 갔었습니다.

덜컹거리는 트럭 뒷자리에 , 가방 들고(깔고) 쪼그리고 앉아 갔으니...

내려서 점심 먹으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홍시가 으께져 가방안이 온통 난장판이었습니다.

경주에서 뭘 봤는지는 별 기억이 나지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산골이나 어촌을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내 本籍은 <慶尙南道  蔚山郡  下廂面   伴鷗里  >  입니다.

1960년대 들어, 우리나라가 공업화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울산군>이   <울산광역시>가 되었고,

내 본적이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 으로 바뀌었습니다.

<반구리(동)> 우리 동네가, <중구>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울산광역시에는  중구 남구 동구 북구 그리고 울주군이 있는데

<중구>에 살았으니 그렇게 촌사람은 아닙니다(?).

옛날 그때 그시절에는 서울도, 종로통 빼고는 시골이나 비슷했지요.

아마도 내가 살던 <伴鷗里>가 서울로 치면, 장충동이나 한남동 쯤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장충단공원이나 남산, 그리고 한강이 보이듯,

우리집 바로 옆에는 학성공원鶴城公園이 있고 저 앞으로는 태화강太和江이 흐르고. 


그립다, 말을 할까.......


                                          <2023-02-13>


 


*   울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 이름. 

옛지명으로 아리마을 · 외골[外谷] · 방마디이 · 뻐던 · 대배[大房] · 가서(加西) 등의 옛마을과

찜대골 · 미영밭골 · 삼밭골 · 미륵골 · 무룡골[舞龍谷] 등의 골짜기, 범바우 · 해룡산(海龍山)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배이는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이고,

찜대골은 짐을 실은 배가 다녔다고 해서,

미영밭골은 미영(목화의 방언)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해서,

가서마을은 가대 서쪽에 있다고 해서,

삼밭골은 삼밭[麻田]이 있다고 해서,

무룡골은 용이 춤을 춘 곳이라고 해서,

미륵골은 미륵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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