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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38.  금석지감今昔之感 (2015-02-21) | 박영하 | 출처 : - 2018-01-11
 

산을 오르다 보면 계곡 골짜기에, 산비탈에 가랑잎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눈 내린 산길도 짓밟힌 낙옆들때문에 미끄럽기가 짝이없습니다.

그리고  병충해때문에 벌목을 해서 쌓아놓은 나무무더기들이 여기저기에 썩어자빠라져 있고.

이런 광경들을 볼라치면 옛날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 땔감은 주로 나뭇가지나 낙엽이었습니다.

물론 농사를 짓는 집은 짚이었지만.

나뭇꾼들은 떨어진 나뭇가지나 잎들을 갈쿠리로 끌어뫃았습니다.

나뭇가지나 잎중에서도 <솔가지>나 <갈비>가 최고였습니다.

소나무 가지를 ’솔가지’라 하고 말라서 땅에 떨어진 솔잎을 ’갈비’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땔감이 참 귀했습니다.

어찌나 베어가고 꺾어가고 긁어갔던지 산들은 온통 민둥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북한의 벌거숭이산들처럼.

그랬어도  사람들은 겨울이면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갔습니다.

우리마을에서 산(東大山)까지는 약 30 ~ 40리를 걸어가야 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면 저녁녘에 돌아왔습니다.

여자는 머리에 나뭇짐을 이고 남자는 지게에 지고.

소가 있는 집은 소바리에 싣고.


내가 살던 곳은 시골도 도시도 아닌 그런 곳이었습니다.

산골이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도시로, 울산 시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변두리 촌으로 여겨지는 그런 어정쩡한 마을에 살았습니다.

사는 곳은 면面이었고 다니는 학교는 읍邑이었습니다.

우리집은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농사꾼집이라면 못살았을 것도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논배미(배미 :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 하나하나의 구역)도 여기저기 다섯도가리(도가리 : 배미의 경상도 방언)나 되었고,

밭뙈기도 여럿이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큰 밭은 크기가 스무마지기(4000 평)였으니 학교운동장보다 더 컸습니다.

그밭자리에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지금은 집도, 논도, 밭도 모두 남아있지않고 선산만 강동산에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우리집은 농삿집이라 짚이 땔감이었지만, 겨울엔 농한기여서 머슴이 소를 몰고 동대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봄철 진달래꽃이 필 즈음엔 소바리나뭇짐위에 참꽃(진달래과)을 꽂고 와서, 저녁무렵이면 나는 그꽃을 기다렸다 받아 따 먹던 기억이 납니다.

그 머슴이 춘자아버지였습니다.

할머니 먼친척이었습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엔  눈에 띄기 무섭게 긁어갔던 귀하신(?) 땔감들이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썩어서 땅에 거름이 되기엔 너무나 넘쳐나고  비바람에 쓸려내려간 낙엽들이 하수구를 막아버리기도 하고...

지금은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좋아진 건지, 어쩐 건지.....


                                                  <201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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