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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83.  <부품사업>에 얽힌 나의 이야기 <2020-06-29> | 박영하 | 출처 : - 2018-03-18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쓰이는 핵심 소재 3가지의 수출을 규제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오히려 위기를 기회 삼아 기술 개발에 속도를 높이면서 자립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지난해 7월,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와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습니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핵심 소재를 노린 보복 조치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우려했던 피해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기술 자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소재素材와 부품部品 그리고 장비裝備.

이제 우리는, <소부장素部裝>의  (비교적 안정된)가격도 중요하지만,

(이번과 같이 일방적으로 공급사슬 supply chain 을 끊어 버릴 때 벌어지는) 그 가치에 눈을 뜨고

국산화와 탈일본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술과技術課 신입사원으로 회사인생을 시작해서,

평생을 <기술개발>과  <신사업>을 업業으로 해서 살았습니다.

공장과 본사를 오가다가, 본사 개발본부장으로 있던 84년 2월, 이사로 선임이 되었는데

5월 이사회에서 전자용Connector 사업에 대한 보고를 했고,

전자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전자용Connector 가 유망하다는 데 의견들이 뫃아졌고,

사장께서 투자규모를 불문하고 추진하라는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그 당시,  VTR (Video Tape Rcorder) 이 대유행이었는데

VTR 에는 엄청 난 양의 Connector 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룹 기획조정실 전기전자분과회와 금성계 사장단회의를 거쳐, 금성통신과 경합끝에,

금성전선이 Connector사업을 하기로 결정이 났고

JAE(일본항공전자)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1985년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Connector사업을 시작할 때, 크게 감명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Connector사업을 시작할 때 1차 타겟은, 금성사 VTR사업부였습니다.

자재부, 설계부, Incomming Q.C.부서 등 여러부서를 마치 <쥐가 나락 섬 드나들듯> 할 때 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성전자 VTR사업부 구매와 설계부서 담당자들이 우리 공장을 둘러보러 왔습니다.

물론 삼성전자 VTR사업부에도 우리 Connector신제품을 소개하고 채택해 줄 것을 요청해 놓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공장을 둘러보면서 여러가지를 물어도 보고 확인도 하고는,

’한꺼번에 전량을 교체할 수는 없지만, 단계적으로 대체 구매를 하겠다’며

’자기네들이 저녁을 사겠다’면서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 데로 저녁대접을 할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도리’ 라고 했더니 과장급인 책임자가 하는 말이,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자재를 공급해 주시니 당연히 우리가 저녁을 사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규를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우리 모두는, 숙연해졌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높지도 않은) 과장이었습니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그룹으로 우뚝 솟아 있음은 우연의 소치가 아니라,

일찍부터 이런 인재를 기르고 조직문화를 확립하려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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