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l  sitemap  l 
   
   박영하
   박영하
 
   박영하
HOME > 박영하 > 박영하 
   
28073.  <신기술新技術 신사업新事業>에 얽힌 나의 이야기 | 박영하 | 출처 : - 2018-03-16
 




1967년 신입사원 시절,

세심동축(細芯同軸)케이블(small diameter coaxial cable) 개발을 담당하고 있던 선배가 미국으로 유학을 덜컥 가버려

엉겁결에  내가 떠맡게 되었고 머리와 눈썹을 빡빡 밀고 기계옆에 붙어서 밤낮을 지새며,

3개월 동안 공장 밖을 나가지 않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1968년, 방수형 Wellmantel 통신 케이블을 개발할 때였습니다. 

(공장 시설과장이 설계 제작한) 도포기계장치가  갑자기 폭발해, 공장 나무천정에 불이 활활붙었습니다.

혼비백산, 정신없이 불을 꺼려 15m가 넘는 지붕위로 올라갔었는데

스레이트지붕에는 프라스틱 채광창이 여기저기 있었기 때문에,

아차 !  밟았으면  저 아래 공장바닥으로 추락할 뻔 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공장 바닥엔  온통 기계들이 널려있었는데....

여담 한마디.

불이 난 공장 울타리 바로 너머에 럭키하이타이공장이 있었는데

그때 (아마 토요일 오후) 잔업중이던 아가씨들이 달려와, 일열로 나란히 서서, 물동이 물바가지를 건네주고 건네받으며,

지붕 꼭대기에 있는 나에게로 물을 퍼날라 주어 간신히 불을 껐습니다.

소방차는 불 끈 뒤에 왔고.

다음달 조회 때, 상으로 금성사 선풍기를 받았고 고향 어머님께 선물로 보내드렸습니다.




1970년대말쯤으로 기억합니다.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Finland 의  Nokia社로부터 기계설비를 도입하기로 했을 때였습니다.

Meeting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면서 9시에 호텔로 pick-up하러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황당한 소리로 들렸지만, 별달리 대꾸할 처지도 아니라 ’알겠다’하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먼길을 날아온다고 피곤도 하였고,

Meeting에 신경 쓰느라 녹초가 다된 몸이라, 호텔방에 들자마자 녹아떨어졌습니다.

자다깨어보니 아직도 7시.

밥 먹으러 가려면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았는데, 배에서는 ’쪼그락’ 소리가 나고.

그렇다고 저녁만찬이 기다리고 있는데 군것질을 할 수도 없고.

어렵게 힘 들게 기다리다 보니 시간은 되었고 우리를 데리러 왔습니다.

시내를 벗어나 숲이 우거진 공원같은 곳에 있는 식당으로 우리들을 안내했습니다.

들어서면서 보니 손님이라곤 우리들밖에 ....

’저녁 9신데’, 참 이상타 싶었습니다.

저녁 9시인데도 밖은 환하니 밝았습니다.

이윽고 주문한 요리가 하나씩 나오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나오는데로 먹어치웠습니다.

배가 고팠으니까.

지금 기억으로는 요리중에는 북극 갈매기요리도 있었던 것같습니다.

10시쯤 지나니 그제서야 한 팀, 두 팀씩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레스토랑을 나선 11시쯤에는 홀안이 온통 시끌벅적했습니다.

’ 이사람들!

내일 새벽에 일 나가야 할 사람들인데...

언제 자지?

몇 시간을 자나? ’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며 식당을 나섰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 미스테리 ’ 입니다.


1983년, 미국 AT&T社와 광섬유(Optical Fiber) 생산을 위한 합작투자 및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할 때의 일입니다.

부사장을 모시고 계약 관련 협의차 미국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새벽 6시 40분에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6시 20분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KAL 007이 사고가 났다고 했습니다.

KAL 007은 뉴욕에서 출발했고, 우리는 KAL 015로 LA에서 출발하여,

중간급유를 위해 앵커리지에 함께 기착해 있다가 20분 간격으로 같은 항로로 김포로 날아왔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는 기억입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시대를 좀 앞질러 갔던 것 같습니다.

이익을 내야하고 성과 / 결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에서는 Timing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나는, 회사에게도, 나에게도 부담을 주었습니다.

78년, KAIST와 광섬유(Optical Fiber)공동 개발연구 시작,

84년, 국내 최초 LAN(Local Area Network) 개발 착수,

           KETRI와 LAN 공동연구계약 체결,

           미국 Sytek社와 Local Net 독점공급계약 체결,

85년, JAE(일본항공전자공업주식회사)와 정밀전자기기용 Connector 기술제휴계약 체결,

88년, 88 서울올림픽 CATV Network 독점공급,

93년, 국내 최대규모의 미8군 CATV System 수주 등….


내 한평생은 <기술개발>과 <신사업>을 찾는 외길 인생이었다고나 할까…


위 이야기는 내 홈페이지 <박영하 이야기>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나는 대학 4년을 공부는 않고 엉뚱한 짓만 하다가 근근이 졸업을 했는데도

그 누가 빈정대는 것처럼, 학벌 때문이었던지 그 당시 취직이 어려웠음에도 금성사에 입사를 했습니다.

전기電氣의 전電자도 모르고 졸업한 나를, 전기공학과電氣工學科 나왔다고 전선회사 기술과로  배치를 했습니다.

쟁쟁한 친구들은 생산부서, 시설부서 등으로 배치를 했는데 나 혼자만 기술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쟁쟁한 다른 친구들은 기술이 있으니 생산부서나 시설부서에 가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나같은 녀석은 기술과에 가서 기술을 좀 더 익히라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쨌던 나는 기술과技術課 신입사원으로 회사인생을 시작해서,

평생을 <기술개발>과  <신사업>을 업業으로 해서 살았습니다.

공장과 본사를 오가다가 본사 개발본부장으로 있던 84년 2월 이사로 선임이 되었는데

5월 7일 이사회에서 전자용電子用Connector 사업에 대한 보고를 했고

전자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전자용電子用Connector 가 유망하다는 데 의견들이 뫃아졌고

사장께서 투자규모를 불문하고 추진하라는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그룹 기획조정실 전기전자분과회와 금성계 사장단회의를 거쳐,

금성통신(주)와 경합끝에, 금성전선(주)가 Connector사업을 하기로 결정이 났고

1986. 1월 20일(월) 일본항공전자(JAE)와 기술제휴계약을 채결했습니다.


오늘, 옛날 업무용 수첩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1986. 01. 15(수)   電線事業部 부장회의

                                     1.   LAN  /  電子用 Connector  :   金星電線 첫 <비전선非電線>사업 진출

                                     2.   ....

                                     3.   ....


돌아보면,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나는 회사인생을 철저히 비주류非主流로 살아왔습니다.

나는 내 (반골적인) 성향이 主流로 살지 못하게 했으리라 여겨왔었는데.......

어허, <비전선非電線>에 <비주류非主流>라.............

이 무슨 아이러니Irony인가?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박영하이야기   |  박영하   |  가족공간   |  삶의여유   |  즐거운인생   |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