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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59.  <그냥보십시오> 꿈꿀 줄 아는 사람 | 박영하 | 출처 : - 2023-09-20 오전 7:15:06
 

예술가의 위대함은 그들을 후원해주는 사람의 위대함에 달려 있다.

처음에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였다.

그에게 화가가 되라고 부탁하고 그를 초빙해서 시스티나 성당에 프레스코화를 그리도록 한 사람은 교황이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직감했고, 그에게 도전을 던졌고, 그 도전을 뛰어넘도록 자극했다. 


창조적인 시대에는, 그리고 한 시대의 창조성이 놀라울 정도로 집중되는 그런 장소에서는, 모두들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한계를 뛰어넘으라고 요구한다.

이미 알려져 있고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특이한 것, 또는 불가능한 것까지도 전부 해내도록 요구한다.

상식,습관,평범함과 충돌하는 그 어떤 것, 보통을 넘어선 뭔가를 요구한다.

창조적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그들은 그것을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한다.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울 계획을 했던 교황들은 세상의 그 어떤 성당도 견줄 수 없는 성당을 원했다.

피라미드처럼 높지만 그보다 수백 배 아름답고 건축 과정 역시 수백 배 복잡하고 힘든 성당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 이런 요구는 미켈란젤로에게 도전으로 작용했다.

그는 공학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들과 완전히 새로운 구성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문제들이 그의 창조성을 자극했다.

우리가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이다.


창조적인 시대에는, 그리고 창조성이 집중된 분야에서는, 사람들이 현재 능력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제시한다.

그 문제가 풀리면 거기서 풍요로움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잉여물이 생기고 잔고가 남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 열심히 일하고 전력을 다하며 자기 자신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겨룬다.

기존의 지식이나 과거에 이루어놓은 것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다.

가능성을 향해 달려감으로써 능력은 설정된 목표와 비례해서 커간다.


우리 세기는 미국인들의 창조성에 지배를 받아왔다.

소비재의 거의 전부가 미국에서 발명되었거나 대량생산되었다.

기업가들은 대중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환상과 욕구를 해석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유럽의 엘리트들은 변화를 두려워했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자동차를 주려는 포드의 생각은 한때 미친 생각이거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간주되었다.

오랫동안 위대한 기술 혁신들은 ‘미국적인 것’을 유치한 것으로 생각되게 했다.

여러 해 동안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애니메이터 팀들에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화영화로 만들게 한 월트디즈니의 생각도 마찬가지 취급을 당했다.

지식인의 관점에서, 정치가의 관점에서, 유럽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것은 낭비였다.

할리우드가 엄청난 블록버스터의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인기 스타들을 만들어냈을 때도, 유럽 사람들은 똑같이 비웃는 태도를 보였다.

할리우드를 ‘꿈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부를 때, 이탈리아에서는 은근히 경멸하는 감정을 보태서 말한다.

배우들은 꿈속의 인물이므로 스크린 밖에서도 동화나 신화처럼 살아야만 했다.


할리우드가 신경을 쓴 것은 영화에 나오는 것과 똑 같은 집이었다.

그들을 위해 의상, 집, 자동차, 적절한 연인들을 만들어냈다.

이 모든 것은 동화 같고 모범적이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대중들에게 동일화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이곳이 바로 소비의 모델이 쏟아져 나온 곳이며, 이 모델들은 조금씩 조금씩 대중적인 것이 되어갔다.

미국인들은 꿈을 자원으로 생각했다.

"꿈꿔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미국의 슬로건이 있다. 


유럽에서 우리는 이처럼 중심점을 옮겨 꿈을 강조한다는 것이, 독특한 신호이자 창조적인 시대의 상표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창조성이 우리 시대를, 대중을, 기업을 버리고 떠났을 때,

우리는 인간 존재가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줄어든다는 심각한 사태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믿음은 인간의 꿈에 대해, 그 가능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믿음이었다.

그 뒤를 이어 조심스럽고 믿지 못하고 의심 많고 탐욕스러운 자세가 따랐다.

각자 될 수 있는 한 조금씩만 베풀고,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기대하는 것도 적다.

원대한 계획을 마음속에 그리지도 못하고, 그것을 믿지도 않고, 그런 계획을 세우는 사람을 비웃는다.

기업가와 창조적인 인간 대신에 의심 많고 회의적인 관료가 자리를 차지한다.

지식인들은 창의적인 것들을 반대하고, 사람들이 훨씬 정직하고 훨씬 단순하며 낭비도 별로 하지 않았던 지나간 시절을 회상한다.


이탈리아의 창조성도 언제나 이런 정체된 비관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1950년대에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다.

1960대에는 컬러텔레비전에 반대했다.

당시 유럽 담당 장관이었던 라 말파와 그 패거리들은 컬러텔레비전 방영을 연기시켰는데,

그게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영화는 그 주역들이 전 세계 사람들이 꿀 수 있는 꿈을 생산해내기를 포기했을 때,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음 <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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