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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08.  <그냥보십시오> 가을은 짧다 | 박영하 | 출처 : - 2023-11-15 오전 8:03:08
 

   #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도 이젠 옛말인 것 같다.

봄과 가을은 있는 듯 없는 듯 휙 지나가고 찌는 여름과 엄혹한 겨울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봄이 그랬듯이 정말이지 이 가을 역시 너무나 짧을지 모른다.

하지만 짧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리라.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절정에 다다르면 또 어느새 그것들이 낙엽 되어 흩날릴 것이다.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다.


 # 1978년 미국 예일대 의학부 임상심리학과 교수였던 대니얼 레빈슨과 그의 동료들은 10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이란 책을 펴냈다.

그들은 마흔 살을 기점으로 인생의 여름이 끝나고 빠른 속도로 인생의 가을이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40년 전 얘기다.

지금은 50대까지도 인생의 여름이라고 착각(?) 아닌 확신(!)을 할 만큼 너무나 팔팔하다.

사실 요즘 세태로만 보면 자연의 사계절이 희미해지듯 인생의 사계절도 구분짓기 모호해지는 것 같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너무 조숙해 초등학교 5, 6학년이면 사춘기를 맞는다.

그러곤 이미 10대 중반부터 인생의 여름으로 진격한다.

그리고 그것이 40, 50대까지 이어진다.

예전엔 40, 50대가 인생의 가을이라고 할 만했겠지만 요즘은 턱도 없는 얘기다.

마흔 언저리에 초혼하는 남자도 적잖지 않은가.

그러니 인생의 가을이라고 할 만한 시기는 훌쩍 뒤로 밀려 6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때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겨울은 80대 이후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 그런 의미에서 68세를 일기로 얼마 전 세상을 뜬 작가 최인호는 인생을 짧은 봄과 긴 여름으로 뜨겁게 살다가 굵고 짧은 가을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져간 사람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어느 날 서리 내리듯 다가온 암의 음산한 기운이 그를 곧장 인생의 겨울로 몰고 갈 기세였지만 그는 손톱 빠진 손가락에 골무를 끼워서라도 글을 쓰며 자기 인생의 가을을 가장 붉게 물들였다.

이런 뜻에서 그는 결코 인생의 겨울 앞에 움츠리며 살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기 인생을 추수하듯 살았고 암에 걸려 투병한  5년여의 시간마저도 그에겐 엄혹한 겨울이 아닌 풍성한 가을이었다.

그것도 가장 눈부신! 그래서 결코 길다고는 말할 수 없는, 아니 짧은 인생의 가을이었지만 그것은 끝까지 분투하는 삶이었기에 참으로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웠다.


 # 저마다 그 파릇했던 인생의 봄은 아련한 기억이요,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인생의 여름은 전설처럼 남겠지만 무릇 진짜 인생은 그가 살아낸 가을에 있다.

저마다 인생의 가을은 결코 길지 않다.

아니 땀 흘려 얻은 수확을 즐길 여유마저도 없을 만큼 짧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한탄만 할 수 없다.

그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거든 머뭇거리지 말라.

어디론가 떠나는 열차에 오르고 홀로 혹은 누군가와 함께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과 붉게 물드는 산을 향해 걸어라.

낙조 좋은 바닷가에 이르거든 지난여름 뜨거운 젊음들이 거쳐간 모래사장 위에 서서 그윽한 눈길로 수평선 끝을 바라보는 것도 잊지 말자.

그리고 다시 곳곳에 펼쳐지는 시골장터로 느리게 걸어가 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우며 아낙네들의 수다와 흥정하다 싸움판 벌이는 사내들의 엇나간 혈기도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자.

우리도 그들과 다름없이 살아오지 않았던가.

가을은 짧다.

우리네 인생의 가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을 산이 붉게 물들 듯 우리의 이 짧은 인생의 가을 역시 그렇게 아름답게 물들여야 하지 않겠나.


                                              정진홍의 <소프트파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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