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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86.  <그냥보십시오> 지금이 바로 그때 | 박영하 | 출처 : - 2024-06-05 오전 7:10:26
 

승가에 결제, 해제와 함께 안거 제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결제 기간과 해제 기간은 상호 보완한다.

결제만 있고 해제가 없다면 결제는 무의미하다.

마찬가지로 해제만 지속된다면 안거 또한 있을 수 없다.


여름철 결제일인 음력 4월 보름 이전까지는 책 만드는 일로 너무 자주 산을 내려갔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과 관계된 일이므로 그 나름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팎으로 분주하고 고단한 나날이었음이 되돌아보인다.


이제는 다시 산의 살림살이에 안주할 때가 되었다.

옛 선사의 법문에,


때로는 높이높이 우뚝 서고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라


이런 가르침이 있는데, 안거 기간은 깊이깊이 잠기는 그런 때다.

그 잠김에서 속이 여물어야 다시 우뚝 솟아오를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나 온 세월 동안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가신 큰어른들의 가르침 덕이다.


해인사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안팎으로 수행자의 터전을 닦던 풋중 시절,

구참 스님들로부터 보고 듣고 익히면서 배운 그 덕이 결코 적지 않았다.

겉으로 수행승의 차림만 했지 안으로는 새카만 먹통이었는데

수행의 덕을 쌓으신 구참 스님들의 말 없는 가르침에 그때마다 큰 감화를 받아 먹통을 조금씩 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홀로 사는 나를 받쳐 주는 저력이 있다면 장경각 법보전에서 조석으로 기도하던 그 힘이라고 생각된다.

큰 법당에서 대중 예불이 끝난 후 혼자 장경각에 올라가 백팔 배를 드리면서 기도하는 일로 그날의 정신적인 양식을 마련했었다.

기도는 꾸준히 지속하는 그 정진력에 의미가 있다.

어쩌다 도중에 한두 번 거르게 되면 기도의 리듬이 깨뜨러지기 때문에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법보전 주련에는 지금도 이런 법문이 걸려 있다.


부처님 계신 곳이 어디인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


이 주련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에 전율 같은 것이 흘렀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소리 높이 외치고 있었다.


팔만대장경판이 모셔진 그 곳에서 큰 소리로 들려오는 가르침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나 따로 어디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종교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도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다른 시절이 있지 않다"는 임제 선사의 가르침도 같은 뜻이다.


오두막 둘레는 한동안 철쭉이 볼만했다.

그대로 바라보기도 아름답지만 밭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훨신 아름답다.

여기 사물을 보는 비밀이 있다.

노출보다는 알맞게 가려진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노출을 자랑하는 여름철에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법정法頂 에세이집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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